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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잔칫날>: 잔칫날이 사람의 온기를 담아내는 방법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21-11-29


<잔칫날>: 잔칫날이 사람의 온기를 담아내는 방법


장건재(영화감독)


이 글은 영화 <잔칫날>(2020)에 비평문이라기보다는, 최근 몇 년 동안 감상한 한국영화들의 인상을 경유해 제24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만난 여러 영화에 대한 단상, 그리고 무엇보다 이 글은 서사의 스펙터클에 집중하기보다는 사람의 온기를 담아내려고 노력한 <잔칫날>이라는 단단한 데뷔작을 만들어낸 김록경 감독에 대한 (감히) 응원으로 읽어주시면 좋겠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나는 대체로 비평의 자리보다는, 영화를 배움의 대상이나 연구의 목적으로 삼거나, 세상에 발 딛고 살면서 경험한 것들을 영화의 언어와 감각으로 옮기는데 골몰하는 중이다. 물론 보는 영화와 만드는 영화와의 간극은 매우 크고, 나의 작업이 많은 시간이 흐른 후에 어디쯤 위치하게 될까 상상해본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한 발씩 겨우 내딛거나 버티기를 반복하면서 전진하는 것뿐이다.  

 

아주 가끔, 운이 좋으면 여러 영화를 몰아서 감상할 기회도 얻는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영화제작 워크숍을 열거나, 영화제 예심을 보거나, 또는 관객으로서 영화제에 참석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 그렇다. 그럴 땐 어쩔 수 없이 당대의 영화들을 성기게나마 조망하게 된다. 지금 같은 하늘 아래 살면서 어떤 일을 함께 겪고 있는가, 그 와중에 너와 나는 얼마나 같고 다른가. 우리는 영화라는 것을 어떻게 사고하고 있는가, 등등에 대해서 말이다.

 

여기 몇 개의 징후가 있다. 지금 한국영화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는 이야기는 남성-청소년들이 등장하는 잔혹 성장담 혹은 유사 갱스터물이다.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약육강식의 세계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질풍노도의 십대가 등장하는 영화들. 주인공들은 대개 삐딱하게 담배를 물고, 오토바이를 타고, 보호해야만 생존이 가능한 십대-여성을 파트너 삼아 고약한 악당들과 싸우다 장렬히 최후를 맞이한다. 주인공의 곁에는 언제나 수다스럽거나 뒤뚱거리며 걷는 조연이 등장하며, 사회적 약자는 도구적으로 배치되고 그들의 고통은 여과 없이 전시된다. 가해자의 폭력은 액션 장르의 카타르시스로 휘발되고 피해자의 폭력은 정당방위로 정당화된다. 이와 같은 소재는 한동안 상업영화와 독립영화 진영 모두에서 주류 서사로 시장에서 살아남았다. 또 다른 한쪽에는 로맨티시즘을 표방한 남선-시선의 멜로드라마가 있다. 그것이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을 탐구하는 이야기든, 여성/남성의 ‘몸’을 소재로 하는 주제든 영화는 대체로 여성을 대상화하면서 남성의 시선으로 그려진 여성의 욕망과 몸을 상상하는 이야기가 많았다. 여성은 보는 존재라기보다는 보여지는 존재로, 스스로 말하기보다는 누군가의 승인과 도움이 있어야만 발언권을 얻을 수 있었다. 지금 언제적 이야기를 하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불과 20년 전 한국영화 시장에 있었던 꽤 많은 영화가 위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었다.



그 시절 한국영화에 등장했던 아주머니들은 더이상 폭력적이고 무책임한 남편과 살지 않으며, 이제는 중년이 되었을 그 시절의 십대-여성들은 가부장 질서의 가족제도로 편입되기보다는 홀로 서거나 유사 가족을 만들어 살고 있다. 한국영화에서 아버지는 이제 살부(殺不)의 대상이 아니라 거의 지워진 존재로 존재한다. 또는 할 말을 거의 잃어버렸거나, 그저 멍하니 서서 주인공들의 사투를 지켜볼 뿐이다. 이렇듯 청소년 학원물의 주인공은 대체로 여성으로 바뀌었고, 그들은 더는 피해자로 머물러 있거나, 주먹을 좀 쓰는 남성 주인공 옆에서 보호를 바라는 약자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의 고민은 또래의 남성 학생들이 생애주기에서 경험하는 것과는 결이 다르며 다양한 호기심을 따라 연대하고 모험을 감행한다. 

 

이제 많은 창작자가 나쁜 현실을 그린다는 이유로 폭력을 전시하지 않으며, 사회적 약자를 단순한 대상으로 일반화하지 않는다. 주인공들의 힘은 악당을 해치우는 데 쓰기보다는 약자를 돕는 데 이용한다. 누군가는 ‘무해한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무해한 이야기’가 시대정신이라 말할 것이고, 누군가는 ‘복원’ 또는 ‘대안’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거친 남성-마초들이 사라진 자리에 등장한 다양한 젠더의 주인공과 서사는 어떻게 진보-변화할 것인가. 이 질문은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 주로 익스트림한 고어영화나 공포영화를 선호해왔던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이하 부천)에 초청된 한국영화들은 어떠할까? 한동안 부천의 영화들을 놓쳤던 것 같다. 때마침 한국 장편영화 부문의 심사위원 제의가 왔고 오랜만에 장르의 활기로 가득한 영화의 홍수에 빠져보기로 했다. 작년여름의 일이다. 

 

대체로 저예산-독립영화로 제작된 13편의 한국영화들을 보면서 주목했던 것은 이 영화들이 어떻게 ‘장르’에 접속해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는가, 였다. 장르의 세계로 들어간 이야기들이 어떤 방식으로 지금의 세계를 거울처럼 보고 있는지, 장르의 쾌감을 얻기 위해 영화적으로는 어떤 희생을 감수하고 있는지, 혹은 사회파 영화들이 주제를 지키기 위해 희생자와 가해자를 놓는 자리에 대해서 생각해보기로 했다. 

 


아쉽게도 많은 영화가 번득일만한 아이디어를 재료 삼아 출발하긴 했지만, 새로운 길을 열지 못하고, 같은 자리를 맴돌다가 두서없이 끝났다. 어떤 영화는 너무 시대착오적이었고, 어떤 영화는 동시대의 문제를 다루고 있었지만, 사건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인상이었다. 어떤 영화를 지지하고 지켜내야 할까를 고민하던 중에 만난 영화가 <잔칫날>이다. 

 

부천에 초청돼 오는 피칠갑 영화들에 비하면 비교적 잔잔한 TV드라마 타이즈인 <잔칫날>은 사이좋은 남매의 평범한 아침 풍경으로 시작한다. 오빠를 종종 ‘경만’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살가우면서도 장난기 넘치는 동생 ‘경미’. 동생과 티격태격하면서도 너그러운 마음을 가진 오빠 ‘경만’. 이들은 오랜 시간 병상에 있는 아버지를 돌보고 있고, 실질적인 가장인 경만은 생계를 위해 각종 행사의 사회자로 일한다. 경만의 일은 비정기적이며 행사의 일당은 제각각 다르다. 경미의 학업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파트타임으로 일하며 오빠와 번갈아 가며 아버지의 병실을 지킨다. 어머니는 오래전에 집을 떠났기 때문에 이들에게 ‘아버지’는 부양을 해야 하는 부담스러운 존재이면서도, 한편으로 희망의 이유가 된다. 세 가족은 아버지의 상태가 나아지면 낚시를 하러 가자고 약속한다. 과연 그 약속을 지킬 수 있을까. 

 

어쩌면 남들보다 더 많은 불행을 겪었을지 모르는 가난하지만 단란한 가족. 결코, 희망을 포기할 것 같지 않은 이 가족을 보고 있으면 누구라도 이들에게 앞으로 좋은 일만 있기를 바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기대를 비웃기라도 하듯 영화는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으면서 시작한다. 그리고 세상에 남겨진 두 남매에게 닥친 처절한 현실이 마치 초현실의 그림처럼 펼쳐진다. 영화는 슬픔을 추스를 겨를도 없이 이들이 치러야 할 돈에 관한 이야기로 이어진다. <잔칫날>은 이 영화의 제목을 차라리 ‘돈’이라고 불러야 할 만큼 모든 과정이 돈과 연관돼 있다. 아버지의 느닷없는 죽음과 경만이 일당 200만 원을 받기 위해 자청한 시골 팔순 잔치에서의 해프닝, 그리고 함께 일하는 행사업체 선배의 출산은 하나의 맥거핀처럼 보일 지경이다. 

 

이 남매에게 오늘 가장 필요한 건 다름 아닌 돈이기 때문이다. 개념으로써의 자본이 아닌, 경만이 아직 받지 못한 일당, 아버지의 숙환으로 밀린 병원비, 장례식 손님들에게 대접할 머리 고기의 값, 아버지가 남겨놓은 큰아버지의 빚, 그리고 염습과 남은 장례의 비용. 경만의 친구들도, 순박한 시골 사람들도 모두 돈을 담보로 고민하고 실랑이를 벌인다. 여기에 누가 더 속물이라느니, 돈을 너무 밝힌다느니 비난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인간은 아무도 없다.

 

이 영화는 실재의 감각으로써의 ‘돈’과 하루에 일어난 일이라고 믿기 어려운 탄생과 죽음의 아이러니들이 서로 교차하며 조응하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잔칫날>은 서두르지 않고 여러 군상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는 경만과 경미의 감정을 공을 들여 섬세하게 묘사한다. 거기에 오랜 시간 배우로 활동해온 김록경 감독의 연기 연출이 빛을 발한다. 주인공을 맡은 배우 하준과 소주연은 TV 드라마에 익숙한 얼굴이지만 자연스러운 얼굴로 인물들이 처한 상황을 깊이 공감하면서 진심을 다해 연기한다(배우 하준은 <잔칫날>로 코리아 판타스틱 장편 부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또한 팔순 노모의 효자로 분한 배우 정인기의 정확하면서도 정직한 연기는 극을 안정감 있게 이끌고 있으며, 경상도 사투리를 구사하는 조연들의 감칠맛 나는 연기도 영화에 활력과 온기를 더하고 있다. 독립영화 씬의 베테랑 배우 안민영, 김자영의 앙상블도 이야기의 블랙 유머를 만들어내는 데 큰 역할을 한다.


 

물론 이 영화에 질문이 남아 있지 않은 건 아니다. 경만과 경미가 사는 곳에서 창원과 삼천포는 당일에 오갈 수 있는 장소에 존재하는가. 또는 경만이 당장 장례식장으로 돌아올 수 없는 물리적 거리를 왜 영화는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지 않은가. 왜 이 세계는 모두 장남의 역할만 존재하는가. 동생 경미는 오빠 경만의 승인 없이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는가. 그녀는 왜 무기력하게 울고만 있는가. 이주 여성 핑핑은 단순히 한국어에만 서투른 것인가 혹은 서사를 위해 지나치게 순진한 얼굴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이 질문에 대답은 김록경 감독의 다음 영화로 미루어야 할 것 같다. 그는 다른 무엇보다 ‘가족’이라고 하는 보수적 가치를 신중하게 생각하는 중이다. 집 떠난 어머니를 원망하지 않고, 병든 아버지를 지켜내고 떠나보낸 남매의 절절한 이야기는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잔칫날>은 코로나 펜데믹 속에서도 개봉 관객 1만 명 이상이 극장을 찾았다. 그보다 조금 앞선 시기에 개봉한 김록경 감독 주연의 독립영화 <여름날>(2020, 감독 오정석)이 평단의 호의적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1천 명의 관객도 불러모으지 못한 형편과 비교해보면 <잔칫날>의 성적은 꽤 준수한 편이다. 이 차이는 무엇일까. 단순히 배급 비용과 마케팅 전략 때문일까. 혹시 독립영화에서도 스타의 얼굴이 필요한 것일까. 몇몇 독립영화의 팬덤 현상은 종종 기록적인 흥행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독립영화의 흥행은 기대하기도 예측하기도 매우 어렵다. 이제 막 데뷔전을 치러낸 두 감독은 어떻게 차기작을 준비하고 있을까. 다시 같은 방식을 시도할까 혹은 대중적인 시장으로 진입해 작업을 이어갈까. 어쩌면 제3의 길을 모색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어느 쪽도 쉽지 않을 것이다. 다만 지치지 않고 건투하길 바랄 뿐이다. 그건 <잔칫날>의 경만과 경미의 앞날에 바라는 희망이기도 하다.


문득, 어두운 밤, 경미가 아버지의 병실 앞에서 디자인 스케치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아마도 그녀에겐 녹록지 않은 현실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꿈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명 MC 경만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그가 생활인으로서 가족의 지키는 일 외에 무엇을 꿈꾸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는 장면은 없다. 다만 경만에게 당부하고 싶은 건, 동생 경미의 걱정은 좀 뒤로하고 자신이 그리는 세계를 향해 걸어가라고 응원하고 싶다. 아버지의 유해를 뿌리러 간 바다의 배 위에서 경미가 경만에게 보라고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살아 돌아온 아버지는 물론 아닐 것이다) 그건 영화를 보는 당신의 마음속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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