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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크리틱] <어느 다행인 죽음>(2022, 장가영)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24-08-18


<어느 다행인 죽음> :  떠나간 이를 직면하는 시작점에서

정지혜(영화평론가)


장가영 감독의 <어느 다행인 죽음>에는 크게 두 개의 플롯이 있고, 그 각각에는 죽음의 흔적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각 죽음의 연유가 표면상 곧바로, 단박에 드러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두 플롯은 공통된다. 누군가의 죽음 이후, 남겨진 이들은 어떻게 죽음 그 자체, 죽음의 이유와 직면하고 대면할 것인가. 이 어려운 문제 앞에 서 있는 인물들이 있다. 하나는 윤재(표민수)와 윤정(유현주) 부부이다. 윤재는 윤정에게 뾰족하고 날 선 말을 잔뜩 쏟아내고, 윤정은 무기력하게 윤재를 바라본다. 아내를 뒤로하고 일터로 나선 윤재. 그는 특수청소부로 사자(死者)의 집을 정리하는 일을 한다. 동료 우영(서석규)과 함께 그가 청소할 곳은 혼자 살다 자살한 것으로 추정되는 기태(정호승)의 공간이다. 그곳에서 그들은 동생이 자살했을 리 없다며 울부짖는 기태의 누나 시원(강지원)과 마주한다. 기태의 서사가 이 영화의 또 다른 플롯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을지 몰라도 그가 남긴 생전의 흔적이 그의 생을 말해줄 것이다. 기태의 공간에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그가 내면의 감정을 투사해 가며 그려나갔을 나무 그림들, 많은 약봉지, 임용고시를 준비한 흔적, 뇌 병변 장애 4급에 해당하는 장애인 증명서 같은 것이다. 기태의 누나를 포함해 살아 있는 자, 남아 있는 자는 죽은 자, 떠나간 자가 살았던 지난 시간을, 그가 살아생전 어떤 고민 속에서 사투를 벌였는지를 쉬이 짐작할 수 없다. 그런 것은 늘 죽음 뒤에 오며, 총체적으로 파악될 수도 없고, 단편적인 형태로만 가까스로 제시될 뿐이다. 동생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동생의 자살을 의심하는 누나 앞에서 정작 기태의 죽음의 연유를 되짚어 나가는 건 기태를 한 번도 본 적 없는 완벽한 타자 윤재다.


 

기태의 죽음을 둘러싸고 윤재가 해보는 이 짐작과 추정의 과정은 영화적 상상과 영화적 허용이라는 이름으로 가능한 일일 것이다. 이 방식에 관해서는 과도하다고 볼 수도 있겠으나, 그러한 방식을 통해서 이 영화가 시도하고 싶은 지점은 분명해 보인다. 기태의 죽음을 둘러싸고 장애와 자살 같은 단어를 꺼냈을 때, 단어가 규정하는 지나친 명징함과 선명함에 가려지는 것들이 있다. 이를테면, 자기만의 꿈을 갖고 그것을 향해 한 걸음 나아가는 기태의 부단한 시도, 그런 것과는 또 별개로 어쩔 도리 없이 그만이 느꼈을 외로움 같은 것이다. 윤재의 상상과 짐작이라는 이 영화적 상상과 허용을 통해 시도한 건, 결국 누군가의 죽음을 단편적으로 재단하고 확정하는 게 아니라, 다른 각도에서 다른 단서들로 재조합하고 새로이 복기하며 사자를 떠올리는 일일 것이다.


 

이 시간을 거치고 돌아온 윤재가 비로소 윤정과 마주한다. 그들 사이에는 유산으로 잃은 아이가 있다. 이들은 여전히 그들 사이를 떠도는 이 죽음의 그림자와 정확하게 대면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들은 이제 막 그 작업의 출발선에 서 있을 뿐. 두 사람이 말없이 집안 곳곳에 널브러져 있는 세간 살림을 정돈하고, 식탁에 마주 앉아 함께 밥을 먹는 일로 그 시작을 알린다. 아이의 죽음을 둘러싼 두 사람의 복기의 시간, 그 시작을 영화는 이렇게라도 만들어 주고 싶어 한다. 윤재라는 인물을 통해 전혀 무관해 보이던 두 죽음이, 두 개의 플롯이 교차하며 마련한 마주하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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